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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10

스피노자-앎은 능동성을 찾아준다. 왜 앎은 우리를 능동적인 상태에 있게 하는가? 어떻게 이해를 통해 수동은 능동으로, 결국에는 슬픔을 기쁨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가능해지는가? 그런 이해가 실천이 아닌 이론과 관련되어 있는 한 오히려 반대로 앎과 이해가 수동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응답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앎은 이해하려는 것에 순응하기 위해 모든 동기와 주도권을 유보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모든 유약함, 인간의 비참한 조건과 관계되는 앎은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기보다는 오히려 슬픔을 주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은 앎에 대한 매우 잘못된 개념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스피노자는 응답할 것이다. 사물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 즉 적합하게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을 어떻게 다룰지, 대상의 자극에 어떻게 대응할지, 대상을.. 2021. 1. 17.
[철학]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 필연성(결정론) 본 장에서는 자유의지의 허상에 대해 스피노자의 견해를 설명한다. 사실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으며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연쇄적인 관념 혹은 내재된 욕망을 통한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한다. 능동적인 결정의 주체가 아니라 욕망을 따르는 혹은 과거 경험을 통해 누적된 선택이 있을 뿐이다. 스피노자의 견해를 참이라 가정하면 인간은 어떤 태도를 겸해야 할까? 또한 자유의지의 부재를 받아들이면, 타인이 본인에게 해를 끼친 것 자체가 타인의 자유의지(나를 겨냥한 의도)로 기인함이 아니고 타인의 욕망 혹은 사적인 경험의 누적을 토대로 한 필연적인 행위였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를 통해 타인에 대한 관용도 자연스럽게 키워진다고 한다. 짚고 넘어가기를 한번 쯤 읽고 생각해보자. '의지와 선택에서 벗어나라' - 짚고 넘어가기 1.. 2021. 1. 10.
[인문] 끌림: 사랑으로 개화 불가능한 두근거림 스피노자에 따르면 사랑의 감정은 타자와 마주쳤을 때 발생하는 기쁨으로 설명된다. 그렇지만 타자로부터 유래한 기쁨은 꽃으로 만개할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만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전자가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면, 후자가 '끌림'이라는 감정이다. 스피노자의 영민함은 이 두 종류의 기쁨을 구별한다는 데 있다. 사랑과 끌림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우연'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다.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기쁨이 필연적일 때, 우리는 이 기쁨을 사랑이라고 한다. 반면 그런 기쁨이 우연적일 때, 우리는 그것을 끌림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다 사랑은 내게 필연적인 기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게 사랑을 가져다주는 그 사람만이 나의 기쁨을 지속시켜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필.. 2020. 12. 27.
[철학]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란 책을 조금씩 읽고있다. 스피노자의 이론에 대한 해설서인데 사례보다는 이론을 풀어 설명하고, 짚고 넘어가기 라는 스스로 생각 해볼만한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질문이 좋아 몇 가지 포스팅한다. 친구들과 토론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스피노자 이론의 중심에는 정서, 욕망, 감정이 있다. 따라서 본서도 정서를 중심에 두어 해설하고 생각해볼만한 질문을 한다. 정서의 정글에서 정서의 중요성을 아래와 같이 피력하고, 이어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철학자들은 우리를 갈등하게 만드는 정서를 인간의 결핍에 의해 생겨난 악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정서를 비웃고 한탄하고 비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도적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정서를 비하한다. 1. 당신에게 가장 강한 정서를 떠.. 2020. 12. 21.
[인문] 두려움: 과거의 불행이 현재를 지배하는 슬픔 아래의 글에서 강신주는 두려움은 과거의 불행한 경험이 미래에도 일어날까 염려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과거에 쓰라린 아픔을 두 번 경험하고 싶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누구나 겪었을 과거의 고통이 현재에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생각해본다. 보통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도피하는 경우가 많다. 내 아픈 경험을 상기하여 곱씹는 과정 자체에는 자신의 (게을렀거나 비겁했던) 추한모습이 동반되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일한 사건을 계기로 그 행위 자체를 금하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예를들어 한 번의 지독히도 아픈 경험으로 인해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인생이라는 그림을 채색함에 있어 중요한 색 한 가지를 빼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여 때로는 죽음, 이별, 실직, 이혼, 가난과 같이 불편하.. 2020. 12. 21.
[인문] 회한: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할 것처럼 살자 엎질러서는 안 되는 물동이를 엎질렀다는 슬픈 느낌, 이것만큼 회한의 감정에 대한 좋은 비유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우리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그렇지만 회한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순간의 결정이 이다지도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며 삶을 슬픔에 물들게 할지는 몰랐던 것이다. 여기서 회한의 감정이 가진 한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그때는 내가 너무 미성숙했다.", "그때는 내가 너무나 나약해서 용기가 없었다." 이렇게 무기력과 비겁의 경험을 배경을 회한은 꽃피는 법이다. 역설적으로 회한에 빠진 사람은 이제 자신이 무기력과 비겁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한다. 과거에는 무기력하고 비겁해서 물동이를 들지 못하고 물을 엎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성숙하고 강해져.. 2020. 12. 9.
[인문] 야심은 아카시아 나무이다. 야심을 가졌던 적이 있는가?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말처럼 야심은 때로는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대학원 생활을 하는 동안 야심을 가졌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보내기 위해 펀딩을 알아보던 시절 어머니는 미국에 가는것에 반대했었다. 그 당시 나는 '왜 자아실현의 욕구를 응원해주시지는 못 할 망정 반대를 하실까?'하는 생각에 잠겼었다. 지금은 어머니의 솔직함에 감사한다. 해외 학위과정동안 감내해야 할 고독함,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미뤄지는 결혼 시기, 학위 이후 한국 생활 가능 여부 등.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지금 드는 생각은 그게 자아 실현의 욕구였는지도 의문이다. 막연한 인정욕구를 자아실현의 욕구로 확대해석한게 아닌가 싶다. 궁극적으로 미국 박사학위 자체가 목적이.. 2020. 12. 9.
[인문] 자긍심: 정체성 - 밀란 쿤데라 오늘은 북마크 해둔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자긍심'편을 필사한다. 사랑이라는 건 상대의 장점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랑을 토대로 사랑을 받는 타자는 자신의 장점을 볼 수 있고, 그것은 자긍심 함양의 계기가 된다. 누군가를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준 경험 혹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경험을 한 번쯤 상기해봐도 좋겠다. 우리는 평생 내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타자는 너무나 쉽게 내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간혹 이렇게 말할 것이다. "머리에 뭐가 묻었네요. 이리 와서 돌아봐요, 제가 털어 줄게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상의가 바지에서 빠져나와 있으면 나는 어김없이 그에게 그 사실을 일러 준다. 이건 뒷모습에만 해당되는 것은 .. 202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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