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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인문] 끌림: 사랑으로 개화 불가능한 두근거림

by 흠지니어 2020.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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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에 따르면 사랑의 감정은 타자와 마주쳤을 때 발생하는 기쁨으로 설명된다. 그렇지만 타자로부터 유래한 기쁨은 꽃으로 만개할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만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전자가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면, 후자가 '끌림'이라는 감정이다. 스피노자의 영민함은 이 두 종류의 기쁨을 구별한다는 데 있다. 사랑과 끌림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우연'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다.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기쁨이 필연적일 때, 우리는 이 기쁨을 사랑이라고 한다. 반면 그런 기쁨이 우연적일 때, 우리는 그것을 끌림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다 사랑은 내게 필연적인 기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게 사랑을 가져다주는 그 사람만이 나의 기쁨을 지속시켜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필연적인 기쁨이다. 반면 우연적인 기쁨에서 연유하는 끌림은 이와는 다르다. 반드시 그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가 가진 유머감각, 혹은 부유함 등이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도 잇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가진 것이 나에게 매력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지금 나의 현재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내가 우울하면, 그녀의 유머감각은 분명 내게 기쁨을 줄 수 있다. 내가 가난하면, 그가 가진 돈이 곧 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반드시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이것이 우연적인 기쁨의 핵심적인 요소다. 그래서 너무나 우울해서 외로울 때 누군가 따뜻하게 대해 주면 우리는 그와의 만남을 기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연적인 기쁨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만약 내게 우울함이 가시고 행복감이 찾아올 때, 이런 우연적인 기쁨은 첫눈처럼 덧없이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끌림이란 우연에 의해 기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그 어떤 사물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너무나 서둘러 일찍 결혼하는 여성이 있다. 이건 그녀의 행복지수가 매우 낮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불행한 가족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은 행복지수가 매우 낮다.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가 조금만 잘해 주어도 금방 그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밥을 멀을 때마다. '식충'이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던 여자가 있다고 하자. 그녀에게 어떤 남자가 "정말 맛나게 잘 드시네요."라고 친근하게 이야기한다면, 그녀가 어떻게 그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곧 가족을 떠나 그와 새로운 삶을 꾸리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남자와의 생활이 어느정도 안정이 되면, 그녀는 금방 그에게 심드렁해질 것이다.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남자보다 조금 더 잘해주는 남자가 생기면, 그녀는 금방 새로운 남자에게 또 끌리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냈지만 그 대가로 화려한 연예인이 되는 데 성공했던 여배우들의 경우에 대부분 결혼 생활이 비극적으로 파난 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끌림은 사랑이 아니다. 끌림이 나의 과거 상태에 의존한다면, 사랑은 나의 본질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음식이 배가 고파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내 입맛에 맞아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허기짐이 없을 때에만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나의 삶 자체가 지나치게 불행한 건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다시 말해 끌림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이 어느 정도는 행복하도록 스스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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