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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TC

[철학논문] 헤겔의 행복관: 욕망 충족으로서의 행복 - 2편

by 흠지니어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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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서 2편을 작성한다. 1편에서는 아래 항목들에 대해 다루었다.

  • 본 논문의 선정 계기
  • 헤겔의 변증법 개요, 헤겔 배경(위키)
  • 본 논문의 배경 및 학술지 소개
  • 헤겔의 '정신현상학'-'이성' 챕터에서의 행복의 정의: 소명에 따른 삶
  • 이성 단계의 개인이 행복에 도달키 어려운 이유 및 한계점: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행복의 계량화를 통해 불안을 느낌
  • 계몽주의의 개인: 계몽주의는 경험을 통해 설명할 수 없는 종교적인 것을 현실과 무관한 것으로 부정

헤겔이 말하는 행복

 

 

본 글에서는 아래 항목에 대해 기술한다.

  • 계몽적 개인의 행복
  • 인륜적 행복
  • 욕망과 인정의 실현으로서의 행복
  • 헤겔 행복관의 현대적 의미

1. 계몽주의 개인의 행복

  '이성'장의 개인과 비교하면 '계몽주의'의 개인은 '필연성'과 같은 어쩔 수 없는 힘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이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계몽적 개인의 특징을 헤겔은 '유용성의 추구' 라 말한다. 이러한 유용성의 추구 속에서 개인들은 교유한 확신과 자기만족 그리고 향유에 도달한다. 즉 계몽의 행복은 유용성을 추구하는 삶이다. 헤겔은 이성 단계에서 불행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은 이제 계몽에 이르러 그 자신이 이세계의 진정한 중심이라고 확신하게 되며 여기서 행복을 마음껏 즐기는 절대적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서술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들은 각각의 개별성을 서로 인정하는 보편적인 '공동의지'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계몽의 개인은 스스로를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이라고 천명하지만 그 절대적 자유란 개인의 차원은 물론이고 집단의 차원에서 그 자신에 반하는 입장을 절멸시킬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변질되기 때문에 폭력적 상황, 죽음의 공포로 개인을 내몰게 된다.

  계몽의 개인이 형성하는 공동의지는 인류의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한 집단적 혹은 당파적 성격만을 가지며, 이는 집단적 대립의 형태로 공동체 전체를 전면적인 폭력으로 몰아넣게 된다. 따라서 계몽주의 시대의 개인은 그 이 전의 어떤 단계보다 그 스스로를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라고 확신하지만 동시에 그 어떤 때보다 가장 불행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2. 인륜적 삶의로서의 행복

앞선 내용을 정리해보면, 근대의 개인은 이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향유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지만 극단적인 대립과 폭력이라는 행복에 반하는 상황에 빠질수밖에 없다. '이성'장에 간접적으로 서술된 헤겔이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은 민중의 정신, 죽 자신을 실질적인 보편자로 자각한 개인들의 공동체적 삶에서 실현된다. 이러한 인륜적인 삶이란 앞선 행복설에 대한 헤겔의 비판을 통해 추론하자면, 개인의 쾌락추구가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으로 공동체적인 조화를 이룬 상태를 의미한다. 헤겔은 인륜적인 개인의 모습을 '정신'장, 특히 '자기 확신하는 정신'에서 도덕성을 논하면서 제시한다. '정신'단계의 개인은 '이성'단계의 적대적 분열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로 스스로를 지양하게 된다. 헤겔은 그 모범적인 모델을 그리스의 '인륜성'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 인륜성은 헤겔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적 삶은 개인이 공동체와 직접적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막연히 믿는 상태에 머물기 때문이다.

  칸트주의는 '도덕과 행복의 조화를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조화가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의무를 절대시하는 만큼 그러한 도덕의식은 현실에서 불완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절대적 의무를 현시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칸트주의는 행복을 요청하기는 하지만, 그 행복의 여부는 우연에 맡겨지며, 은총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헤겔에 따르면 이러한 칸트주의의 문제는 도덕과 행복 양자가 '도적적 행위'속에서 이미 통일되어 있음을 알지 못하였기에 발생한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정신'의 단계에서 도덕과 행복은 분리되지 않는다.

왜나하면 도덕적 행위란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며, 따라서 충동의 형태를 가지는 의식, 즉 도덕적 행위는 직접적으로 충동과 도덕성의 현실적인 조화이기 때문이다.

칸트주의에 대한 헤겔의 비판이 타장한가는 논쟁거리이지만, 그 비판을 통해 헤겔이 생각하는 도덕과 행복의 통일로서의 행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흔히 사람들은 행복과 도덕은 충돌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은 행복이 주관적인 용망의 충족에서 오는 것인 반면, 도덕은 그 욕망을 억제하는 것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헤겔은 이러한 행복과 도덕의 형식적인 대립구도는 '양심'의 단계에서 해소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양심'의 개인은 더 이상 현실과 분리된 신이나 피안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여기서 행복과 도덕의 분리는 무의미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헤겔이 묘사하는 양심에 따르면 개인은 이성과 계몽에서 나타났던 삶의 분열을 넘어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절대정신'에 이르는 과정은 '양심'을 넘어선 새로운 단계가 아니라 '양심'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실현된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헤겔 철학에서 진정한 행복은 결국 '양심'을 서로가 '인정하는 계기'로 삼고 행위하는 개인들의 삶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양심이란 자기의식의 공통적 요소이며, 그것은 행위가 존립하고 현실성을 갖게 되는 실체이다. 즉 양심이란 타자로부터 인정을 받는 계기다 - 헤겔

 

3. 욕망과 인정의 실현으로서의 행복 - '확신과 충동'과 '삶의 욕망' 그리고 '인정'

헤겔이 제시하는 인륜적 삶은 근본적으로 욕망의 충족과 여기서 오는 쾌락을 향유하는 것을 절대 배제하지 않는다는 축면에서 기본적으로 욕망충족에 관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헤겔은 예나 시기부터 욕망을 삶의 동력이자 의식 발전의 핵심적인 계기로 받아들였고, 이러한 태도는 정신현상학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다. 

욕망충족이 실현되는 형태를 아래 두 가지로 나눈다.
- 자기 확신의 충동
- 삶의 욕망

'자기확신의 충동'이란 쉽게 말하면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관점이 옳다고 믿는 태도다. 이러한 충동은 그 본성상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확신의 충동'의 충족은 쾌락의 원천이자 행복의 기본 조건이며 근대 행복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 충족은 착란과 광기 그리고 끊임없는 대립과 투쟁이 발생하는 근본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헤겔의 독특한 점은 이러한 대립과 투쟁을 자기확신의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종교'나 '소명', '교양'은 자기중심성을 일시적으로 억제하거나 통제하는 상태를 의미할 뿐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는 수단일 수 없다. 헤겔이 보기에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을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일만한 체험이 필요한데, 그것이 대립이 만들어내는 고통, 특히 공포다. 이는 헤겔이 서로가 대립하면 공멸할 수 있다는 공포를 전면적으로 체험하는, 즉 '계몽'의 단계를 거친 개인들을 진정한 행복의 주체로 상정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그렇다면 '삶의 욕망'의 충족은 행복과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는가? 헤겔은삶의 욕망, 즉 생존과 연관된 욕망 또한 자명한 인간의 본성으로 전제한다. 물론 헤겔은 홉스와 같은 근대의 철학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욕망의 충족 또한 행복의 기본 요소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삶의 욕망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적대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런데 헤겔 철학의 고유성은 이 욕망의 충족 구조에서 개인들 상호간의 '인정'의 토대를 발견한다는 것에 있다. 

 

헤겔에 따르면 욕망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위해 세계를 무화 시키려는' 원초적 충동이다. 자연을 먹어치워 없애버리면서 만족을 느끼는 식욕이나, 타인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사랑도 욕망의 과정이다. 인간은 욕망하기에 어쩔 수 없이 대상의 자립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인 존재다. 왜냐하면 대상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욕망할 수 없고 따라서 삶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욕망은 이기성에서 벗어나 개인이 실질적인 상호인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한다. 근대 행복설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러한 인정의 구조가 아직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4. 헤겔 행복관의 현대적 의미

헤겔의 행복관은 마르크스의 소외론을 선취할 정도로 근대 사회에 대한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물론 정신의 자기운동을 전제할 때 이미 예견된 것이지만 헤겔 철학의 목적론적 구조는 현대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헤겔 사후 더 극단적인 대립과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었지만 현대 사회에서 실질적인 상호인정을 통한 행복은 여전히 요원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행복관은 여전히 현대 사회에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헤겔의 행복관은 현대 사회에서 행복에 관한 논의가 넘쳐나지만 개인들이 여전히 불행을 느끼게 되는 근본적 이유를 욕망의 충족 문제로 다시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헤겔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은 투쟁을 통해 획득되는 '상호인정'의 상태에서 온다. 즉,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실질적인 인정관계 속에서 충족시킬 수 있을 때만 행복할 수 있다. 여전히 욕망을 강조하는 현대의 대다수 행복담론은 그 행복을 주관적 심리 상태로 환원하거나, 부나 건강과 같은 특정한 지표로 계량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현대의 행복설이 자신의 불행을 재확인시키는 미봉책임을 여전히 경험한다. 불평등한 정치/경제 체제로 인해 인정의 구조가 붕괴된 현대 사회에서 그 상호 인정을 실질적 조건을 배제한 행복담론은 공허와 소외를 재생산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둘째, 이론적 차원에서 헤겔 행복관은 다양한 현대 행복이론들이 만들어낸 이러저러한 대립구도의 유의미성을 재고하게 한다.

이러한 이론적 분화는 결국 행복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이냐는 문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헤겔처럼 개인의 쾌락과 공동체적 조화를 행복의 기본 골격으로 상정하고 그 전제조건을 실질적인 상호인정에서 찾을 경우 현대의 행복설들은 행복에 있어 분리될 수 없는 조건을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행복을 순수한 쾌락이나 주관적 바람의 성취여부로 상정할 경우, 그 성취과정에 선행하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는 행복의 논의에서 배제되기 쉽다. 반면 행복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일정한 능력이나 조건 또는 기준에서 찾을 경우, 그 능력과 조건의 상대성이나 주관적 욕망의 특수성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이러한 행복설들은 근대 행복설이 그러했던 것처럼 삶의 분열에 일조하는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셋째, 실천적 차원에서 헤겔의 행복관은 대립과 고통에 대한 환기 및 공유가 행복추구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헤겔에 따르면 분열의 극복이 행복의 기본 조건이다. 물론 현실은 극단적인 대립과 투쟁 그리고 그것의 산물인 공포를 통해 개인들은 분열을 넘어설 수 있다는 헤겔의 예상이 낙관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역사적인 대립과 분열이 만들어내는 고통을 통해 타자를 인정하기보다는 현실의 이기적 욕망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며, 생존의 공포 속에서 더 극단적인 이기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대립과 분열을 넘어서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어설픈 행복추구보다 더 중요한 실천적 과제로 제기될 수 있다. 여기서 헤겔이 '계몽'에서 논의했던 공포의 계기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대립과 공포는 헤겔 철학에서 개인이 타자를 나와 동등한 자립적인 존재로 인정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대립과 공포가 아닌 평화로운 방식으로 그러한 동기부여가 가능하다면 현대 사회의 개인은 최소한 덜 불행한 공존을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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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보기 - heum-log.tistory.com/6

 

[철학논문] 헤겔의 행복관: 욕망 충족으로서의 행복 - 1편

읽게 된 계기: 최근 철학책을 몇 권째 보던 중, 문득 근래 철학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가 궁금해졌다. 철학의 현대연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우리나라의 '철학'이라는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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