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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TC

[심리] 지행격차: 윤리학 교수들은 더 윤리적일까?

by 흠지니어 202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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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을 행동에 맞추지 말고 행동을 말에 맞춰라."
  • "행동이 늘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지만 행동 없이 행복은 없다."
  • "인간의 삶은 생각이 아닌 행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 "성공과 실패의 유일한 차이는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 "나는 행동하는게 두려운게 아니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게 두렵다"

행동을 예찬하는 이런 명언은 무수히 많다. 이런 명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행동이 어렵다는 걸 말해준다. 우리는 실상적 삶에서 무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다. 원래 우리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까?

 

"늘 도덕적 문제를 취급하는 윤리학 교수들이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들일까?" 철학을 심리학과 접목시킨 미국 철학자 에릭 스위츠 게벨과 조슈아 러스트가 실험을 위해 던진 질문이다.

이들은 헌혈 횟수에서 시작해 문을 닫는 태도, 컨퍼런스를 마치고 쓰레기를 치우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17가지 행동방식과 관련하여 리학을 강의하는 교수들과 다른 교수들을 비교했다. 그 결과 도덕철학 전문가들이라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생각은 생각일 뿐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변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물론 경영학자들은 앞다투어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경영학자인 제프리 페퍼와 로버트 서튼은 '아는 것과 하는 것의 격차'(2000)라는 제목의 책까지 썼다. 간단히 줄여서 '지행격차(知行隔差)'라고 할 수 있는 'knowing-doing gap'은 우리가 해야 한다고 알고만 있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의 격차를 말한다.

 

페퍼와 서튼은 사람들은 늘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만 실행 하지 않았다"면서 이러한 지행격차가 "조직의 성과를 가로막는 가장 골치 아픈 커다란 장벽"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독일 건축가 월터 그로피어스의 '행동 예찬론'을 이렇게 인용한다.

 

"말과 경험으로 시험되지 않은 이론들은 행위보다 훨씬 더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내 평생에 걸쳐 배웠다. 1937년 내가 미국에 왔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바로 가서 직접 시험해보는 미국인들의 성향이 나는 즐거웠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가질 수 있는 가치에 대해 때 이른 논쟁을 많이 하며 모든 싹을 잘라버리지 않았다."

 

페퍼와 서튼은 '지식 실천을 위한 8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 '어떻게' 보다 '왜'가 먼저다.
  • 실행하고 가르치면서 지식을 얻는다
  • 계획과 개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 실수가 없는 실행은 없다. 즉 실수를 인정하고 용납해야 한다.
  • 두려움은 지행격차를 벌린다. 두려움을 몰아내라
  • 끼리끼리 싸우지 말고 경쟁사와 싸우라
  • 지식 실천에 도움이 되는 것을 측정하라
  • 리더가 어떻게 시간과 자원을 쓰는지가 중요하다

지행격차를 극복하지 못해 실패한 대표적 기업으론 코닥이 꼽힌다. 미국의 혁신 전문가 톰 켈리와 데이비드 켈리는 '유쾌한 크리에이티브: 어떻게 창조적 자신감을 이끌어낼 것인가'(2013)에서 코닥을 대표적 사례로 들면서 "말이 행동을 대체하면 기업은 불구가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출발선상에 선 자에게 전통이란 것은 방해가 된다. 코닥의 영광스런 과거는 지나치게 매혹적이었던 것이다. ... 디지털 시작에서 세계적으로 강력한 경쟁자들을 만나면서 코닥은 그게 엄청난 투쟁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실패의 공포가 임원진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아는 것-하는 것의 간극에 빠진 코닥은 화학 기반 비즈니스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는 20세기였다면 성공의 보증수표였겠지만 21세기엔 디지털 저투자로 나타났을 뿐이다.

우리가 코닥에서 본 것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통찰을 효과적으로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의 결핍이었다. 그 결과 미국의 가장 강력한 브랜드가 길을 잃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요다가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말한 것처럼 "하느냐 마느냐만 있지, 해볼까는 없다." 이 말을 소개한 톰과 데이비드는 "궁극적으로 창조적 도약에 이르기 위해선 나중에 이런저런 실패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우선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도해 한 번에 성공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렇더라도 괜찮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장 '최선의 것'을 얻기는 어려우므로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개선을 해나가겠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그런 뒤얽힌 시행착오들이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 수 있겠지만, 행동을 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점점 더 배우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것이 성공에 이르는 전제 조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최선'이 되겠다는 욕망은 '개선'으로 가는 길의 장애물이 될 뿐이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허미니아 아이바라는 '리더처럼 행동하고, 리더처럼 생각하라'는 책에서 "혼자 골똘히 사색에 잠긴다고 답이 나오는게 아니다"고 말한다. "생각만 하다 보면 오히려 행동이 억제됩니다. 겁이 나기 때문이죠. 우리 정신세계는 바꾸는 걸 두려워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가요? 무엇이든 나서서 행동해야 하는 겁니다. 책 제목에서 '행동'이 '생각'보다 먼저 나오는건 이 때문이죠"

 

다 좋은 말이긴 하지만, 지행격차를 없애기 위한 시도에 위험이 없는 건 아니다. 똑같은 결과, 아니 더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가만있는 것보다는 행동하는게 낫다는 믿음, 즉 '행동 편향(action bias)'의 문제다. 행동을 예찬하는 사회에서 행동하지 않는 건 죄악이 된다. 정치인이나 관료둘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 행동을 보여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기 때문에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유혹을 받기 쉽다.

 

한국의 대학 입시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입시 제도는 정권과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바뀐다. 그래서 평균 3년 만에 한 번 꼴로 바뀌어 왔지만, 나아진 건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바람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고통을 받지만,

뭔가 행동을 보여달라는 수요와 이에 부응하는 공급의 사이클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생각해보라. 반세기 넘는 긴 세월 동안 역사적으로 누적된 구조적 모순을 단칼에 바꿀 수 있는 정책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살인적인 입시 전쟁은 학력/학벌 간 임금 격차가 근본 원인인데, 이건 교육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 정권의 임기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답이 없으니 가만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사정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밝히면서 점진적인 변화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정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욱 기가막힌 건 계속 악화만 되는 그런 사태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에선 책임 추궁이 비교적 엄격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업의 총수가 아닌 이상 "일단 저지르고 보자"식의 행동 편향이 나타나지 않는 건 물론, 오히려 정반대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식의 무사안일주의, 즉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이 일어난다.

 

반면 책임 윤리가 부재한 공공 영역에선 행동 편향이 정치와 행정의 전부인 양 간주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단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는 썼다"는 면피용 변명 하나를 위해서 말이다. 유권자들도 세상이 다 그런 거라며 책임을 묻겠다는 적극적 의지도 없다. 이럴 바엔 차라리 공공 영역에선 아예 지행격차를 없애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훨씬 더 나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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