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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TC

[칼럼] 음식: 음식에 대한 사랑만큼 진실한 사랑은 없다

by 흠지니어 2020.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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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광풍이 불고 있다. 가히 광풍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나도 알 수 없는 이유로 폭식/고칼로리 먹방을 보곤 하는데,

보면서도 '내가 이걸 왜 보고있지?'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최근에서야 임의적으로 내린 결론은 그 속에서 어떤 '최상위 생물의 포식행위'를 엿보는 것 같다.

특히 먹는 음식이 살아있거나, 날것(회, 산낙지, 문어, 참치, 소한마리 해체 후 먹방 등..)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 동안은 주로 인간이 최상위 생물이다' 라는 문장에 연상되는 장면이 아래 장면이었다면,

  • 코끼리를 사냥하는 모습
  • 고래를 포경하는 장면
  • 맹수가 갇혀있는 모습

지금은 최상위 생물에 대응되는 장면은 타 생물을 포식하는(먹방) 장면으로 대체된 것 같다.

특히 체구가 작을수록, 먹는 양이 많을수록 인기를 끄는데,

덕분에 내가 보는 먹방도 주로 굉장한 대식가의 먹방을 보게 된다.

 

아래 음식에 대한 사상가들의 생각을 정리했다.

 

"모든 선의 원천과 뿌리는 위의 쾌락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이다. 그가 말한 쾌락은 흥청망청 노는 방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고통과 고난의 결여와 그에 따른 마음의 평화를 쾌락으로 본 것이므로, 그의 철학이 왜곡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epicure는 처음엔 쾌락주의라는 의미로 쓰였으나 점점 뜻이 좁혀져 주로 미식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Epicureanism은 식도락을 뜻한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어야지, 먹기 위해서 살면 안 된다."

미국 정치가이자 발명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그는 이런 명언들도 남겼다. "못 먹어 죽는 사람은 적지만 많이 먹어 죽는 사람은 많다.", "먹보는 치아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이다." 청교도 정신인가?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도 프랭클린의 뒤를 따라 이렇게 말했으니 말이다. "적게 먹으면 후회할 일이 없다." 그러나 훗날 미국은 '패스트푸드의 제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음식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는 '연료'이다."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컬처코드: 세상의 모든 인간과 비즈니스를 여는 열쇠'에서 프랑스에서는 음식을 먹는 목적이 아니라 쾌락이라며 한 말이다. "미국인들이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배가 찼다'라고 말하는 까닭은 무의식적으로 음식 먹는 것을 연료 공급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명은 자신의 연료통을 가득 채우는 일이므로, 그 일이 완료되면 임무를 완수했다고 알리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어디에서나 고속도로에서 주유소와 음식점을 겸한 휴게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형이다. 아니 미국을 한국형이라고 해야 할 만큼 한국의 음식 문화는 '연료 충전' 모델에 철저하다. 최근 들어 '먹방 열풍'이 불면서 먹는 쾌락 중심의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한 끼를 때운다"는 심정으로 먹는 시간을 아껴 바삐 일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먹방은 한국의 푸드 포르노다."

미국의 블룸버그tV가 2014년 1월 14일 한국의 먹방을 보도하면서 내린 평가다. '푸드 포르노'는 고열량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장면을 담은 사진 또는 영상을 의미하는 말인데, 야한 사진이나 영상이 성욕을 자극하는 것처럼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가 손조문은 "푸드 포르노의 수준을 결정짓는 건 영상의 씨즐감과 먹는 이의 연기력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무리 음식이 맛 없어 보여도 주인공이 복스럽게 먹어지우면 우리는 이 먹방에 큰 자극을 받습니다. 입에 양념을 묻히고 손가락을 쪽쪽 빠는 주인공의 모습에선 생의 활기가 느껴집니다. 오물조물 움직이는 주인공의 입에선 의욕이 넘쳐납니다. 사람들이 먹방'을 즐겨보는 이유는 음식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이 아닌, 움직임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요?"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기호대로 자유로이 음식을 해결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미국인의 과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접시 운동'을 벌이는 코넬대학 교수 브라이언 완싱크가 '나는 왜 과식하는가'에서 한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선택의 대부분은 습관에 따른다."라고 단언한다.

 

완싱크가 한 여러 실험중에 이런 게 있다. 완싱크는 영화 관람객들에게 5일 전에 튀겨 눅눅해진 팝콘을 무료로 한 통씩 제공했는데, 절반에게는 큰 통으로, 나머지 절반에게는 중간 크기의 통으로 나눠주었다. 맛이 전혀 없었음에도 큰 통을 받은 사람들은 중간 통을 받은 사람들에 비해 평균 53%나 더 먹은 것으로 밝혀졌다. 영화가 끝난 후 완싱크는 큰 통을 받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더 많이 먹는 것이 통의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대부분은 "그런 술수에는 안 넘어갑니다."라며 그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와 관련, 미국 행동과학자 니컬러스 에플리는 "더 적게 먹고자 한다면, 자신의 의지를 과대평가하지 말고 당장 집에 쌓여 있는 인스턴트 음식과 현대적인 초대형 접시들을 정리하고 더 작은 샐러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라고 했지만, 우리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과대평가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자신이 습관의 노예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영국 작가 버나드 쇼는 "음식에 대한 사랑만큼 진실한 사랑은 없다"라고 했는데, 남녀 간 사랑이 맹목적이듯 음식 사랑 역시 맹목을 향해 치닫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맹목의 정체는 좀 따져볼 일이다. 텔레비전만 틀었다 하면 먹방 타령인데, 이게 오직 그 '진실한 사랑' 때문일까?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세이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중앙일보 기자 민경원은 "먹방과 여행 말고 새로운 예능은 없을까?"라는 좋은 질문을 던졌는데, 이왕 문제 제기를 하신 김에 각 프로그램 장르별 원가를 비교하는 기사를 써주시면 고맙겠다. 먹방이 싸게 먹히고 이른바 '가성비'가 높아 먹방 홍수 사태가 빚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음식에 대한 사랑만큼 진실한 사랑은 없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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