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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TC

[칼럼] 아부: 아부는 민주주의의 엔진이 되었다.

by 흠지니어 2020.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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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같이 그룹으로 일하는 동료가 본인의 칭찬을 요한다는걸 느낄 때가 있다.

객관적으로 적절한 칭찬(?) 을 해주고 싶은데 영 해보지 않은 것이라, 어렵다.

그러나 아래 칼럼에서는 칭찬을 뛰어넘은 아부에 대해 다룬다.

 

아부에 대한 사상가들의 생각은 어떤지 정리해봤다.

 

"아부의 친구는 자기만족이고 그 시녀는 자기기만이다."

이탈리아 사상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한 말이다. "아부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다면 군주는 아부의 먹이가 되고 만다. 궁정에 아부꾼이 가득하다면 매우 위험한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사람이란 자신의 일에 몰입해서 만족하게 되면 그것에 미혹되어 해충 같은 아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저널리스트 리처드 스텐걸은 '아부의 기술: 전략적인 찬사, 아부에 대한 모든 것'에서 "마키아벨리 자신은 전략적 아부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라고 비꼰다. 그는 자신의 '군주론'을 헌정했던 당대 권력자 로렌조 디 피에로 데 메디치에게 "최고의 인물이라고 말하지 않고 (보통 아부꾼도 그 정도의 발언은 할 줄 안다.), '시대가 위인을 찾고 있는데, 오직 로렌조만이 시대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 뿐'이라고 아부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 아부를 하더라도 이렇게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아부를 하려거든 우아하게 하라" 이탈리아 외교관이자 작가인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가 르네상스 시대의 궁정 처세서 중 최고로 꼽히는 조신론에서 한 말이다. "진짜 재주는 기술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렇게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숨기는 일이다."

 

"아첨은 치아에서 나오고, 진실된 평가는 가슴에서 나온다." 미국 처세술 전문가 데일 카네기의 말이다.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찬사는 아첨과는 다르다는 걸 강조한다. "찬사와 아첨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전자는 진심이고, 후자는 위선이다. 전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후자는 입에서 흘러나온다. 전자는 이타적이고, 후자는 이기적이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환영받지만 후자는 일반적으로 비난받는다.... 아첨을 잊고 거짓 없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하자."

 

물론 찬사와 아첨의 구분법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지만, 아첨을 하더라도 수명이 긴 아첨을 하자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사람들은 아첨의 효과를 과소평가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경영학자 제프리 페퍼가 '권력의 기술: 조직에서 권력을 거머쥐기 위한 13가지 전략'에서 한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에게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아첨을 받으면 자신과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기분이 좋아진다. 좋은 기분이 들면 자신의 영향력도 아울러 강화되기 때문에 아첨의 효과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또한 아첨도 칭찬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선물이다. 누군가를 칭찬해주면 당사자는 식사라도 대접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갖게 되듯 아첨도 그런 기분을 갖게 한다."

 

"당신이 세계 최고의 보스입니다." 미국 국무부 정책 국장이었던 앤 마리 슬로터가 2011년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보낸 찬사다. 슬로터는 '뉴욕타임스' 1면에 힐러리의 사진이 실리자 "멋진 사인이 NYT를 장식했습니다.(+0.23%▲)"라고 썼다. 힐러리의 사진 때문에 뉴욕타임스의 주가가 0.23% 올랐다는 아부였다.

 

"당신의 리더십 아래 복무한다는 사실에 황송합니다."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가 2018년 6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72번째 생일을 맞아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그는 한 달 전 의회 청문회에선 "정부 외교정책이 트럼프의 개인 사업과 이해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기이한 질문이다. 다 가짜 뉴스"라고 화를 냈을 정도로 트럼프에 대한 깊은 충성심, 노골적으로 말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부'로 유명하다.

 

"뻔뻔함도 있어야 한다."

작가 강원국이 '회장님의 글쓰기'에서 '효과적인 아부의 기술 일곱 가지' 중 하나라며 한 말이다. "회장에게 아부할 때 주변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한다. 임원에게 영혼이 어디 있냐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뻔뻔해질 수 있다. 회식 후에 회장이 신발을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구두 굽을 잡아주는 임원을 봤다. 그 모습을 보며 뒤에 혀를 차는 임원들이 있었다. 사실은 그들도 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회장의 아들을 지칭할 때, '영식님'이라고 당당하게 말해보라. 뻔뻔함은 회사원의 생존 도구다."

 

"아부는 민주주의의 엔진이 되었다."

리처드 스텐걸의 말이다. "아부는 사람들이 출신이 아닌 자신의 특장점을 가지고 보다 높은 신분으로 상승하는 데 보탬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닫혀 있던 문들을 여는 데 아부가 큰 도움을 주었다. 이제 사람들은 어느 자리든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왕이고 모두가 신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듯 민주주의를 내세워 "아부하고 싶은 욕망은 나쁘지 않다."라며 "그래봐야 얼마나 나쁘겠는가?"라고 묻는다.

 

그런데 문제는 아부를 받는 쪽의 위상에 있다. 막중한 책임을 진 지도자가 문제다.

지도자는 아부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게 늘 우리의 고민이다. 가장 고약한 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아부를 한다는 인상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전략적/지능적으로 아부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아부가 정녕 '민주주의의 엔진'이라면 그걸 감내하는 수밖엔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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