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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TC

[칼럼] 자본주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자들의 학습 능력을 간과했다.

by 흠지니어 2020.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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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서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관심을 갖고 읽었다.

작년에 출장으로 베를린에 갔을 때, 홈볼트대학교 본관 중앙계단에 마르크스의 테제(Thesis)이 크게 써져 있던게 각인이 됐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만 했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 칼 마르크스

'실천'이 마르크스주의의 굉장히 핵심 개념이라는 점이 왠지 썩 마음에 든다.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해석과 그가 주장한 자본주의 한계는 이미 지나온 과거가 됨으로써 결론이 났다.

그러나 그의 철학 기저에 깔린 변증법적인 형태로 공산당 선언의 10가지 강령중의 일부는 현재 한국에서도 적용중이다.

  • 누진세
  • 무상교육
  • 아동 노동 금지
  • 국가 주도의 부동산 계획 

마르크스 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은 '자본가들이 감수하는 리스크를 고려치 않았다.' 정도로 개념화 해 두었는데,

아래 칼럼에는 약간 다른 흥미로는 문장이 있어 정리해봤다.

 

 

"자본주의란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지옥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술사와도 같다." 

독일 사상가이제 경제학자인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한 말이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충돌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승리해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할 거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그 마술사는 여전히 전 세계를 무대로 성황리에 순회공연을 하고 있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무분별한 탐욕은 자본주의와 절대로 동일시될 수 없으며, 하물며 자본주의의 '정신'은 더더욱 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실제로 비이성적인 충동에 대해 절제 또는 적어도 충동에 대한 이성적인 다스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한 말에다. 그러나 이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희망 사항일 뿐 현실은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면 파시즘에 대해서 입을 다물어야 한다."

독일 철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말이다. 슬라보이 지제크의 해설에 따르면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증상'으로서, 자본주의의 '정상적' 논리 외부에 있는 우연한 일탈이 아니라 그 '진리'로 들어가는 열쇠다." 이 또한 좌파의 희망사항일 뿐 꼭 그렇게 나아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자본주의는 '전체 인간'이라는 유령을 쫓아냄으로써 사람들의 정열과 불확실성을 제어하는 중대한 문화적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의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그건 '문화적 성과'라기 보다는 '문화적 재앙'일 것이다.

 

"사회주의가 실패한다면 그것은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자신의 경제적 질주를 길들일 수 있는 정치적 의지와 수단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말이다. 많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가능케 한 자본주의가 파국으로 치닫는 걸 내버려 둘 리 없으니, 자본주의의 진화는 계속될게 분명하다.

 

"'자본주의 4.0'의 시대가 도래했다." 러시아 출신의 영국 경제학자 아나톨 칼레츠키가 '자본주의4.0: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서 제기한 주장이다. 자본주의 1.0이 자유방임의 시기(1815~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미국, 프랑스 정치혁명, 영국의 산업혁명 등으로 현대 자본주의 시작), 자본주의 2.0이 정부가 주도한 수정자본주의 시대 (1914년 이후~1960년대 말; 미국의 위대한 사회, 영국의 복지국가 등), 자본주의 3.0이 시장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시대(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발생한 세계적 인플레이션,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주창한 자유시장경제)라면, 자본주의 4.0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해서 생겨난 개념이다.

 

자본주의 4.0은 정부와 시장은 모두 불완전하며, 오류를 저지르기 쉽고, 시계는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본질로 한다는 전제하에 유능하고 적극적인 정부가 있어야만 시장경제가 존속할 수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자들이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호모데우스: 미래의 역사'에서 한 말이다. 처음에는 소수의 추종자들만 마르크스의 예측을 받아들이고 그의 글을 읽었지만, 그런 사람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자 초긴장한 자본주의자들은 마르크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는 등 혁명을 방지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강구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예측이 빗나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돈과 더불어 지식은 돌고 도는 것이다.

 

"기아와 역병을 극복한 공의 대부분은 성장을 신봉하는 자본주의에 돌아가야 한다."

이 또한 유발하라리의 말이다. 그는 '자본주의 때리기'가 유행이지만, "자본주의를 비판만 하고 그 장점과 성취는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자본주의의 공로를 역설한다.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에 폭력을 줄이고 관용과 협력을 증가시켰으며, 사람들이 경제를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 상황으로 보게 함으로써 세계 화합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무조건 자본주의를 저주 하는 것보다는 이런 균형 잡힌 시각이 오히려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데에 더 도움이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유발 하라리가 2019년 7월 자신의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의 러시아판에서 영문판 등 다른나라 판본에 있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한 비판 내용을 삭제하고 그 자리에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는 내용을 삽입해 출판한 건 씁쓸하다. 그는 "가능한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는 변명을 내놓았지만, 차라리 "나는 지식인으로서의 양심보다는 자본주의를 더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는 온몸으로 자본주의의 힘을 웅변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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