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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인문] 돈에 대한 고찰 - 강신주

by 흠지니어 2020.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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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강신주 책을 읽었었다.

처음에는 유튜브에서 강연하는 영상으로, 이후론 책을 주로 읽었다.

 

주로 '사랑, 자본, 노예/주인의 삶'이라는 키워드를 즐겨 사용하는 철학과 교수인데, 강연도 제법 들어볼 만 하다.

본 포스팅에서는 그의 저서 '감정수업'에서 '탐욕'편에 쓰여진 돈에 대한 저자의 관점 흥미로워 필사해본다.

스피노자의 감정에 대한 정의와 문학작품의 내용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있다.

 

팔로우 하는 블로그에서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책을 요약한 포스팅이 요 며칠 머리에 맴돌아 지인들과 대화도 나눠봤다. 얼마나 있어야 충분할까? 이에 대한 강신주의 관점을 살펴보자.

(원래 예시나 문체가 강경하고 극단적이니 감안할 필요가 있음)

 

탐욕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돈에 대한 갈망은 집요한 것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체제 아닌가. 이제 돈은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한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절대적인 수단이 된 것이다. 절대적인 수단은 동시에 절대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 인정하긴 싫지만 목적화 되어있다. 돈이 수단이라면 목적이 명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다익선

- 재테크 열풍이 불면서 '경제적 자유'가 목표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처럼 목적화 된 자본을 대표하는 말이 있을까? 목적이 무엇인지도 수반되면 더욱 열중 할 것 같다.

- 회사 익명게시판에 아버지 백내장 진료를 위한 안과추천을 요청하는 글을 게시했다. 댓글에 안과 추천을 포함하여 '빚을 내서라도 계실 때 잘 챙겨드리세요' 라는 댓글이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부모를 위해 빚을 낸다는 말이 참 먹먹하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왔다.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이미 돈은 하나의 숭고한 목적으로 승격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돈을 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돌아보면 우리가 대학교와 전공을 정하는 것도, 취업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모두 궁극적으로는 돈을 벌기 위한 것 아닌가. 돈만 있으면 여행도, 물건도, 행복도, 사랑도 심지어는 애인마저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기에 레스토랑의 지배인이, 친구가, 애인이 내게 친절한 건 내게 돈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도 나처럼 돈을 신처럼 숭배한다면 말이다. 결국 돈이 없다면 친구든 애인이든 모두 나의 곁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돈을 모으고 또 모은다. 아이러니하게도 관심과 애정을 받기 위해 돈을 벌려고 했지만, 돈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우리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직접적인 관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마치 신에게 헌신하느라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지도 않는 어느 우매한 아주머니처럼 말이다. 이런 딜레마, 돈에 대한 갈망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있을까?

 

그것은 나름대로 최적 생계비를 생각하며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목적의 자리가 아니라 원래 자리, 그러니까 수단의 자리로 만들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돈을 여행을 가려고, 맛난 음식을 먹으려고, 혹은 멋진 옷을 사기 위한 수단이다. 그리고 돈은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다. 바로 이것이다. 돈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있다. 최적 생계비를 계산하고, 그것을 삶에 관철하는 것이다. "됐어. 이 정도면 됐어. 이제 삶과 사랑을 향유해야지" 갈망에서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은 이렇게 내딛는 것이다.

 

유튜브 한번 보면 느낌이 온다.

 

www.youtube.com/watch?v=KcDhrHLq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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