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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인문]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by 흠지니어 2020.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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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커버

  • 한줄 리뷰: 프롤로그가 가장 멋진 작가, 이로인해 빨려들어갔다가 되돌려져 나온 느낌이다. 저술한 본서와 '감정수업' 중 한권은 완독해볼 만하다.
  • P14. 프롤로그
    • 라캉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느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쉽게 풀어보도록 하자. 여러분은 누구나 자신의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캉에 따르면 불행이도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과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다.
    • 전자가 페르소나면, 후자는 맨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로 자신과 시계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나가르주나, 이지, 마르크스, 들뢰즈 등 솔직한 인문정신이 우리에게 가하는 고통을 견딜 수 있겠는가? 아니 우리는 견뎌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에게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작은 희망이라도 생길 수 있을 테니까
    • p16. 간혹 인간이 겪는 고통의 양은 불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단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일시불로 갚느냐, 아니면 할부로 갚느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정직하고 솔직하다는 것은 일시불로 고통을 겪어내는 것이다. 반면 자기 최면과 위로에 빠진다는 것은 할부로 고통을 겪어내는 것이다. 할부로 고통을 겪는다면 할부가 끝날 때까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사라진다. 일시불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고통을 겪어내자.
  • P21.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자유를 꿈꾸며 사는 사람만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담벼락과 조우할 수 있을 뿐이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자유정신의 본능이기 떄문이다. … 니체는 인간을 가두고 있는 담벼락으로 “유일한 것, 완전한 것, 자기 충족적인 것, 그리고 불멸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원히 고정되어 있어서 바뀔 수 없다고 상정된 것이야말로 인간을 가로막는 담벼락이라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니체는 이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그가 망치로 부수겠다고 선언한 담벼락은 기독교의 신에 한정시킬 이유는 없다. 
      -> 쇼생크탈출, 사파리
    • 들뢰즈는 영원회귀로 응축되는 니체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은 윤리적 강령으로 해석했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든 그것의 영원회귀를 의지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의지하라” 즉, 지금 무엇인가 의지하고 실행하려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10만년 전에도 반복되었고, 10만년 뒤에도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는 것만을 안다. …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즉 찰나의 비굴함이 사실 찰나가 될 수 없으며 영원히 비굴함으로 채색된 생이 반복 될 수 있음.
  • P31.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인가
    • 라캉 에크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업데이트함 타자는 부모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인물을 가리킨다. 개인적 이유에서든 사회적 이유에서든 부모는 젖꼭지를 더 이상 탐하지 않는 아이를 욕망하거나, 젖꼭지를 탐하는 아이를 욕망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금지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특정한 아우라를 지니는 것만을 용망하는 주체로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욕망에는 타자의 욕망이 깊이 개입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분열된 주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라캉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당신이 소망하는 것인가? 지금 내가 욕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타자가 욕망했던것, 혹은 금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 p.36 페르소나와 맨얼굴
    • 언제쯤이면 우리는 페르소나를 벗고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맨얼굴이라고 믿었던 것도 사실 또 하나의 페르소나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도대체 우리의 맨얼굴은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벗겨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배역을 맡도록 강제한다. 결혼해서 시부모를 만났을 때, 젊은 신부는 시부모와의 관계에 어울리는 페르소나를 써야만 한다. 또한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상사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 자신의 맨얼굴이 아니라 자신이 불가피하게 쓰고 있는 페르소나만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에픽테토스는 윌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전자가 우리의 맨얼굴과 관련된 것이라면, 후자는 페르소나와 관련된 것이다. 그는 우리의 맨얼굴에 해당하는 고유한 믿음, 충동, 욕구, 혐오 등도 페르소나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에픽테토스는 페르소나와 맨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삶을 영위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을 간파했던 철학자였다. 다시 말해 페르소나에 집착하다가 맨얼굴을 망각하거나, 혹은 맨얼굴에 신경 쓰다가 페르소나를 경시하는 것, 이 두 가지 극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 그의 성찰로 인해, 우리는 삶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갈등이 어디로부터 유래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맨얼굴을 드러내야 할 대 페르소나를 쓰거나, 반대로 페르소나를 드러내야 할 때 맨얼굴을 보여주려 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맨얼굴이 건강해야 페르소나를 쓸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 p.79 습관의 집요함, 라베송-습관에 대하여
    • 습관은 의지적 운동을 본능적 운동으로 변형시킨다. -> 의식하지 않아도 체화되어 쉽게 수행가능함, 성철과 비트겐슈타인 깨달음에 대한 집착 관련하여 집착하지 않는것이 체화(습관화)되면 집착하지 않으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음
  • p.83 생각의 발생, 하이데거-존재와 시간
    •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과연 언제 사유하게 되는지를 숙고했다.
    • '배려함'이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어떤것과 관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눈에띔'은 '어떤 것과의 친숙했던 관계가 좌절되어 어떤것을 의식하게 된다.' 는 것을 의미함 (낮섦이 찾아옴 -> 생각이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 예: 무의식적으로 열고 나가던 문이 평소대로 열리지 않을 때 비로소 문에 대해서 생각함)
    • 자신이 상대방에 대해 낮섦, 혹은 사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상대는 자신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나 긴장감도 가지지 않는것.


    • 도종완-가구 의 가구같은 관계를 벗어나려면 친숙함이나 정서적 안정도 훼손됨을 감수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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